- 주요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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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탈출을 결심하다
금융권 대리의 삶에서 탈출을 바라게 된 이유?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중 임신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임산부 검사 중 쌍둥이임을 알게 되었고, 입덧과 직장생활로 힘이 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태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의 복부 종양, 추적관찰을 겪으며 원인모를 병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출산 후에도 아이는 수술을 하며 여러번 병원 생활을 겪었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엔 ‘쌍둥이 육아’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분유, 울기, 달래기 등 아이를 혼자 봐야하는 상황이어서 쉴 틈 없고 잠을 못자는 환경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자 잘 컸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절대 혼자 클 수가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좋은 제도가 많이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유모차 두 개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외출도,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토로할 사람도 없어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예상치 못한 쌍둥이 출산으로 일에 집중해야 했기에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운하다기 보다는 환경이 도와주지 않은 상황이었죠.
Chapter 2. 쌍둥이 육아, 발달치료의 시작
아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리게 되셨나요?
남편의 권유로 처음 검사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교육 쪽에 종사하는데 자폐 스펙트럼 아이와 우리 아이의 특징이 비슷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결국 검사를 받았고,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의사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에 그 결심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단을 받았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지금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모든게 막막했습니다.
육아를 시작하고 달리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신생아일 때는 하루에 한시간만 잘 수 있었습니다. 직장도 포기해야 했죠.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니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제 삶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센터를 다닌 후부터는 픽업하느라 더 바빴습니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주기 위해 일과를 가득 채웠고,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육아 서적을 봤습니다. 가끔 아는 부모님들이 발달치료나 센터에 관해 정보를 물어보시는 등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보람됩니다.
비슷한 상황의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발달치료는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센터에서 치료를 받아요. 하지만 병원은 처방만 내릴 뿐, 아이와 가정의 자세한 실정까지 파악하진 못합니다. 아이가 수 회의 치료를 받을 집중력이 있는지, 센터 선생님과 친밀감이 형성됐는지, 가정이 치료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그런 것들은 의사가 파악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발달치료가 진행되는 센터는 반대로 아이와는 가까이 있지만, 처방을 내리진 못합니다. 간혹 센터만 다니고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는 분이 계시는데, 그럴 때 저는 병원 진단을 권유합니다. 의학적 영역과 상담의 영역을 잘 병행하면서, 최종 결정은 아이의 상황을 가장 잘 꿰고 있는 부모가 내려야 합니다. 병원은 ‘이상’, 센터는 ‘현실’ 인거예요.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지금 소통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 중 병원을 가지 않고 센터만 다니는 분께 병원 진단을 권유했는데,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부모분이 많이 힘들어 하셔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저를 만나지 않고 병원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아이의 스펙트럼 사실도 모르는 채로 남았을 텐데. 어렴풋이 아는 것과 의학적인 확답을 듣는 건 또 다르니까요. 하지만 어머님께서 곧 ‘진단명을 받고 나니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고, 다니는 센터에서도 치료가 한결 명료해 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속상하긴 해도 도움이 된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그때 진단을 받았던 친구는 작년에 복지카드를 반납했습니다. 예후가 좋았고, 아이도 많은 노력을 한 거죠.
발달지연, 혹은 비슷한 진단을 받은 부모님들에게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혼자 앓지 말고, 비슷한 진단을 받은 부모님과 소통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세상의 시선은 그렇게 차갑지 않습니다. 혼자서 안고 있지 마세요.
Chapter 3. 나의 지구별 안내자
힘들었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살기 위해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저는 믿을만한 분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병원과 약 복용법에 대한 조언을 얻었습니다. 우연히 받게된 개인 상담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약이나 상담같은 방법은 정신적 문제를 극복하는데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힘드신 분들도, 이렇게 도움을 꼭 받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육아를 시작하고 스스로 가장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유년시절 가족과 갈등을 겪으며 자랐고, 그래서인지 출산 전에는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것도, 빚을 갚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이혼을 하고도 저를 데려온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멋있는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육아를 시작하고 깨달았습니다. 부모가 좋은 사람들, 멋진 사람들이구나. 나를 가족의 울타리에서 보호해 줬구나. 그것이 제가 가족에 대해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제가 육아를 통해 성장했으니, 다른 사람도 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사람책 제목을 ‘한번쯤 해볼만한 육아’라고 짓게 됐습니다.
소개글에 ‘지구별 안내자’라는 표현이 있어요. 이것은 아이를 뜻하나요?
복부에 종양이 있던 아이는 배에 흉터가 생겼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중에 커서 흉터를 속상해 할 것이라고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때 이렇게 말해달라고 하셨어요. ‘이 큰 점은, 네가 어마어마하게 큰 고난을 극복했다는 증거야. 넌 진짜 대단하구나.’
아이가 아프고, 회복하고, 발달 지연 판정을 받고, 또 보통의 아이가 되는 과정들을 통해서 ‘저 아이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열심히 안 살아서야 되겠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제 삶을 조금 더 인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있었어요. 역경을 견뎌내는 강한 생명력. 그 부분을 본받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아이는 저에게 ‘지구별 안내자’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결국 아이가 보통학교에 입학했을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정말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많은 개선이 있었던 거죠. 생각해보면 모든 역경을 하나하나 차례로 극복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던 아이. 그런 아이가 종양에서, 패혈증에서도 회복하고, 온갖 질병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정체를 알기만 한다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요. 저는 이런 성장을 아이에게 말해줍니다. ‘예전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네. 극복해낸 네가 멋지다’ 라고.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제가 사람책을 통해 다룰 부분은 ‘육아’ 파트입니다. 지금은 아이를 교육하고 있는 시기기에 ‘교육’ 파트를 지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잘 마무리 된다면 사람의 성장에 관한 저만의 큰 책이 완성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람책 프로젝트가 주는 울림이 많습니다. 나도 책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자부심 또한 생겼습니다. 사람책 활동은 저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끌고 가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